2023.05.03

가게를 잠시 쉬면서 적금을 깨며 생활하는 마이너스 인생을 선택한지 3개월 째.
매달 가게 월세와 공과금으로 나가는 돈들이 밑빠진 독처럼 빠져나가기 때문에 예전처럼 안먹고 안쓴다고 유지가 되는 생활은 불가능하다.
여튼 마이너스 주머니를 찬 대신 작업에서는 뭔가 성과를 보이리라 라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마감도 없고 받은 돈도 없는, 아무 제약이 없는 시간을 잘 쓰는 것이 항상 가장 어렵다.
틈만 나면 6월 여행에 관련된 정보를 찾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하는 시간이 아까워 죽겠지만, 작업이 막히면 늘 그쪽으로 도망가고 만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면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몇시간 없다.
일어나서 침대에서 좀 밍기적 거리다보면 11시가 넘어 점심을 해야할 시간. 점심을 하고 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잠깐 밀린 대화를 좀 하다보면 1시. 씻기 귀찮아서 또 시간을 미루고 미루다 씻고 나오면 어느새 2시. 나이들어서 이제 화장을 안하고 나갈 수도 없고, 머리가 길어서 머리 손질 시간도 길지만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짧게 짜르고 싶지 않은 나의 업보다. 그렇게 3시가 다 되어 작업실에 도착해서 식물들을 잠시 살피고 세시간 정도 작업을 하다보면 저녁 먹을 시간. 저녁을 늦게 먹으면 좋겠지만, 8시에는 운동을 가야하기 때문에 7시를 넘기면 안된다. 6시 좀 넘어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키다 보면 운동갈 시간이고 필라테스 끝난 후 유산소 20분, 샤워하고 집에오면 10시가 넘어있다. 밤에 작업이 잘 될 때도 있지만 딴짓하기 젤 재밌는 시간이기도 해서 그때그때 다르다. 일과가 매일 이렇진 않지만 여차하면 이렇게 되기 쉬운 패턴이다.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서너시간. 점심과 운동이 몇시간씩 껴있어서 흐름을 깨버리는 것이 큰데 그렇다고 뺄 수도 없고, 방법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한동안은 전날 술을 안마시고 아침에 맨정신으로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었지. 이제 본격적으로 5월의 봄날씨가 시작되니 아침에 두세시간정도 집중 시간을 갖고 점심을 늦게 먹더라도 죄책감이 덜한 스케쥴을 지내보겠다.

혼자 작업하다가 현민이랑 몇 마디 나누는 것 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이 채워졌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을지,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줘야지. 여튼, 계속 완성된 전체 작업만 생각하다가 지지부진하게 길어진 작업을 현민이의 조언으로 단편 단편 거칠게 스케치 해보는 형식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완성도 일단 내려놔.

A FIELD GUIDE TO GETTING LOST

the blue of distance (먼 곳의 푸름)
“우리가 ‘롱잉 longing 이라는 말에 갈망이라는 뜻을 담은 것을 욕망 속에는 가없는 거리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푸름은 내가 영영 도달할 수 없는 먼 곳, 그 푸른 세상에 대한 갈망의 색이다.
어쩌면 거리를 좁히고 싶다는 마음 없이 그냥 거리를 바라보기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영영 차지할 수 없는 푸름의 아름다움을 그럼에도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갈망도 그런 식으로 소유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런 갈망의 어떤 측면은 꼭 먼 곳의 푸름과 같아서, 우리가 그것을 획득하거나 그것에 도달하더라도 결코 충족되지 않으며 그저 위치만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 멀리 푸른 산에 도달하는 순간 그 산은 더 이상 푸르지 않고 대신 푸름 이 그 너머의 산을 물들이는 것처럼. 비극이 희극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미스터리, 어떤 슬픈 노래들과 이야기들이 크나큰 기쁨으로 느껴지는 미스터리가 또한 이 언저리에 있는 일이다. 무언가는 늘 먼 곳에만 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아이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나를 형 성했던 힘들이 아직 생생하고 강력했다. 이후 시간과 함께 기억들 은 대부분 희미해졌고, 내가 그중 하나를 글로 적을 때마다 그 기억은 버려지는 셈이었다. 그 순간 기억은 그림자처럼 흐릿한 추억 으로서의 생을 마감하고 활자로 고정된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살아 있는 것 특유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속성을 잃는 다.
내가 역사가가 된 것은 내게 역사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진실이 통 붙잡기 어려운 것으로 통하는 가족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데 흥미가 있어서이기도 했다고. 진실을 말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어떤 사실들과 권위 있고 객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털어놓는 것이다. 진실은 사건에 있지 않고 희망과 욕구에 있는 것이므로. 내가 그동안 써온 역사들은 숨겨진 것, 잃은 것, 간과된 것, 너무 폭넓거나 형체가 불분명하여 사람들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못했던 것일 때가 많았다. 그 역사들은 특정인이 소유한 깔끔한 밭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았으며 많은 밭을 통과하여 구불구불 난 길이나 물길이었다. 특히 예술의 역사는 거의 구약성경의 족보처럼, 즉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말이 줄줄이 이어짐으 로써 화가는 화가에게서만 태어난다고 말하는 듯한 방식으로 이 야기되곤 한다. 부계만 따지는 구약성경의 계보가 어머니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머니들의 아버지들도 누락하는 것처럼, 그런 단정한 예술사는 화가들이 다른 매체와 다른 접촉으로부터 얻은 자료 와 영향을 누락하고, 시와 꿈과 정치와 의심과 유년기의 경험과 장소의 감각으로부터 얻은 자료와 영향을 누락하며, 역사는 직선보다는 교차로와 갈라져 나간 가지와 뒤엉킨 매듭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누락한다. 나는 그런 다른 영향들을 할머니들이라고 부른다.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물론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감각마저 잃는 것이다. 그런데 상실의 감각이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풍요로움에 대한 기억이자 우리가 현재에 길을 찾도록 도와줄 단서들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익혀야 할 기술은 과거를 잊는 기술이 아니라 손에서 놓아주는 기술이다. 그리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 상실 속에서 풍요로울 수 있다.
영화는 빛뿐 아니라 어둠으로도 만들어진다. 우리가 수많은 이미지들을 모아서 하나의 활동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환 하게 정지된 이미지들 사이사이에 몹시 짧은 어둠들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 어둠들이 없다면, 보이는 것은 흐릿하게 번진 영상뿐 일 것이다. 그렇다면 장편 영화 한 편에는 우리가 못 보고 지나가 는 순수한 어둠이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뜻 이다. 그 어둠들을 다 합할 수 있다면, 극장에서 관객들이 그 깊은 상상의 밤을 다 함께 응시하는 광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은 영 화의 테라 인코그니타, 모든 지도에 있는 검은 대륙이다. 이와 비슷하게, 달리는 사람의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도약이라서 그 는 순간적으로나마 땅에서 완전히 떠 있게 된다.
우리는 예외를 법 칙으로 믿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잃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 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야 우리가 숲속 의 헨젤과 그레텔처럼 뒤에 흘리며 살았던 물건을 하나하나 쫓아 간다면 마땅히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물건 들은 우리를 과거로 감아 당기면서 상실을 하나하나 복구해줄 것 이다. 잃어버린 안경에서 출발해서 잃어버린 장난감을 거쳐 잃어 버린 유치까지 돌아가는 길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실제 대개의 물건들은 되찾을 수 없는 과거의 비밀스런 별자리를 이룰 뿐이다. 꿈꾸는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사라지지않는 꿈속에서나 우리에 게 돌아올 뿐이다. 그래도 그것들은 어딘가에는 존재해야 한다. 주머니칼과 플라스틱 목마는 완벽하게 퇴비로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없이 표류하다가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지는 물건들의 거 대한 흐름 속에서 그것들이 어디로 갔을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그의 의견을 이후 오래 곱씹었다. 이런 의미의 상실에 서는 두 가지 흐름이 뒤섞인다. 하나는 내가 역사가로서 모든 것에 매달리고 싶고, 모든 것을 적어두고 싶고, 모든 것을 스르르 사라 지지못하도록 막고 싶은 갈망이다. 그리고 거의 잊혔던 무언가를, 영영손 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질 뻔했던 무언가를 자료와 인터뷰 에서 도로 끄집어냈을 때 역사가가 느끼는 기쁨이다. 그러나 또 다 른 흐름은 우리 시대에 너무 많은 것이 그것을 대체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속속 사라지는 현실을 내가 남들과 똑같이 겪는다는 점 이다. 어느 순간이든 지상의 어느 곳에서는 태양이 지고 있고, 또 한 번의 하루가 대체로 기록되지 않은 채 스르르 사라지고 있고, 사람들은 깨어나서는 거의 기억도 못 할 꿈속으로 스르르빠져들 고있다. 그런 상실이 지속 가능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려면 반드 시 풍부함이 면면히 지속되고 있어야만 한다. 태양은 앞으로도 뜨 겠지만, 꿈도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낼 수 있는 법이다.
“세상 만물은 원래 사라지는 것이 섭리이지, 살아남는 것이 섭리가 아니” 므로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서 슬프지만, “세상 의 어떤 것은 영영 잃어버린 상태일 때만 우리가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슬픈 와중에도 아름답다. 이것은 기어코 붙잡아서 손에 넣으려 하지 않고 거리를 둘 때만 보이는 풍경, 멀리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먼 곳 의 푸름이다.
그런데 솔닛은 이런 길 잃기를 이야기하다 말고 길을 잃는다. ‘잃다
(lost)의 또 다른 의미인 ‘상실’로 생각이 자유롭게 건너간다. 그래서 문득 문득 기억을 잃는 것, 과거를 잃는 것, 사랑을 잃는 것, 물건을 잃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이런 ‘잃음’의 이야기들은 ‘길 잃음’의 이야기들과 는 달리 슬프다. ‘길 잃음’의 이야기들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아는 세상이 더 넓어지는 모험의 이야기들이지만, ‘상실’의 이야기들은 가령 되찾을 수 없는 연인이나 지구에서 사라지는 동식물처럼 무언가가 우리의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실은 아름답다. 슬프지만 아름답고, 슬프기에 아름답다.
솔닛은 또 답한다. 길을 잃는 일에 왜 길잡이가 필요하느냐고요. 왜냐 하면 우리는 미지의 바다에서 앎을 건져낸 뒤에는 비록 떠났던 곳과는 다 르더라도 다시 항구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음으로써 달라 진 시야를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러야 하지, 그러지 못 하고 영영길 잃은 상태로만 남는 것은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여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다에 삼켜지는 것, 혹은 좌초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2022.11.23

며칠 전, 사실은 즉흥적으로, 오랫만에 HM에게 연락을 하여 만날 약속을 바로 잡았고 어제 만났다. 한 4-5년만에 보는 건가. 상수동에 나와서 살 때는 자주 만났었는데 남양주 본가로 들어가버린 후 만나질 못했다. 한국에서 작업을 한다고 하면 사운드 작업을 함께 하자고 당장 연락했을 친구가 바로 HM이다. 호주 작업은 호주 작가들이 사운드 아티스트라 어쩔 수 없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 아니라면 난 무조건 HM이다. 잘 하는 것은 당연하고, 내가 내는 아이디어들에 흥미가 많아서 거기에 또 좋은 아이디어를 얹어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너무나 성실하다. 난 ‘성실한 아티스트’에게는 무조건 점수를 많이 주고 들어가는 편이다. 작업 생각이 즐거운 요즘의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작업얘기를 하고 다니는데, 어제 만난 HM과의 대화는 특별히 더 신났다. 와, 정말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제.

2022.11.01

토요일 이후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노력 중. 일요일에는 종일 집에 있었고, 월요일에는 10키로를 걸었다. 다시 이전의 생각과 집중으로 돌아오기 어려워서 애써보는 중이다.

토요일에 오랫만에 좋아하는 디제이들을 보러 69에 가려다가 할로윈 코스튬 대회가 있다고 하여 접고 대환영에 갔다. 대환영에 가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연출님에게 연락하여 그간 밀린 수다를 떨었지. 연출님의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들어주고 나의 앞으로의 방향을 물어보고. 많은 얘기를 하면서 힘을 얻었던 이야기. ‘너같이 이것도 저것도 동시에 되는 작가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도 너랑 작업을 한 게 좋았던 거다’라고 오랫동안 옆에서 본 나를 얘기해주었다. ‘넌 계속 해야돼.’ 그리고 중요 한 것은 ‘마지막에 사유까지 이끌어내는 것’ 그게 항상 어렵지. 지금도 어느정도 늘어놓은 생각들을 잘 쌓지 못해서 밟고 올라가진 못하고 있다. 한 계단을 끙하고 올라가야 하는데. 근데 지금 이 상태를 고민하고 있는 것만도 너무 즐겁다. 얼마전 영화하는 BH과 얘기를 하다가 자기는 정말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이라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고 마음에 드는 조언은 스폰지처럼 쏙쏙 빨아들인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편이다. 물론 마음에 드는 의견이 있을 때의 말이지만, 초기 아이디어 단계도 다른 장르들에서 레퍼런스를 많이 얻는 편이고, (연출님의 말에 의하면) 결국 내 것으로 만들어 내 스타일로 끌고 가는 편이다. 아니라고 해도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엇비슷하다(고 한다). 작업의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을 때 여기저기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을 생각하면 기대된다. 소설가처럼 하루하루 꾸준히 채워나가야 보아야지.
아직 결정된 것도 구체적인 것도 없지만, 파리행에 대해서 연출님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당연히 가야지 무슨 소리냐고 한다. 나도 평소 같으면 여기저기 물을 것도 없이 그냥 당연히 가는 것으로 생각했을 텐데, 요즘 수입이 없어서 소심해졌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니 간이 작아지는 반면 식당을 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져 행복하다. 역시 모든 행복은 동시에 누릴 수가 없는 것인가.

2022.10.06 YJ

본가 창고에 있는 내 묵은 짐들을 다 버리겠다는 엄마의 연락에 본가에 가서 뒤적뒤적, 또 다시 추억 여행 시작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놓은 상자가 있는데 양이 엄청나다. 고등학생 때 이미 여러번, 엄마가 갖다 버린다는 걸 울며 불며 지켜낸 덕에 아직까지 무사히 남아있는 상자. 그 수많은 편지들 사이에 따로 모아져있는 100통 정도의 편지는 중1 때 같은 반이었던 YJ가 보낸 편지들이다. 중1 때 교내에서 일어났던 어떤 사건으로 YJ가 누명썼다며 억울해하며 매일 울던 일이 있었다. 모두가 그아이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고 그애는 억울해하며 매일 울었는데 그 모습을 못본 채 할 수 없어 손을 내밀었고 그 이후 아주 오랫동안, 고등학교 때까지 그친구는 많은 부분 나에게 정신적 의지를 하며 지냈었다.
나는 본래 주변에 큰 관심이나 자비로운 배려심 따위가 있는 애는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아주 상처가 커보이는데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안쓰러운 상황을 지나치지 못하는 패턴은 인생에 크게 크게 여러번이 있었다. 그게 참 이상하다. 난 전혀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남보다 내가 먼저인 사람인데, 내 주관적 시선으로 ‘어떻게 저걸 버텨내려고’ 하는 마음이 들면 손을 내밀고 만다. 내가 그런 일을 겪었을 때 나는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하겠다는 마음인걸까. 미스테리. 난 정말 그닥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
YJ와는 중1, 중3 두 번이나 같은 반이었지만 현실 세계에서 친한 것보다는 편지로 서로 고민을 나누고 들어주는 관계였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인지는 아무도 모를 수도 있을 정도로. 그 애는 공부도 꽤 잘했고 반에서 피아노와 달리기를 젤 잘하는 애였는데도 불구하고 성적 고민과 부모님의 기대 문제로 항상 불안해하고 우울해했었다. 그런 고민을 나누고 풀 수 있는 상대가 나였는데 나는 그와 다르게 예민하지도 않고 공부와 노는 것 다 좋아했고 두루두루 친구들이 많았고 학년이 바뀌면 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을 좋아했던 성격이라 시간이 갈 수록 그 친구의 고민 안에는 나와의 관계가 크게 자리 잡게 되었고, 고등학교때 받은 편지들에는 ‘오늘도 너가 보고싶어서 울고 있어’ ‘너를 생각하면 눈물이나’ ‘너는 이번에도 답장이 없겠지만’ 라는 식의 내용이 많았다. 나는 막판 그 친구의 그런 편지들엔 답장을 아예 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차단한 꼴이다.
그 아이가 이후에 어느 대학 어느 과에 갔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지금와서 찾아보려고 하니 이미 늦은 느낌이다. 왜 그 아이는 날 찾지 않았을까. 결국 안좋은 마음으로 귀결된 친구로 남아있는 건지도.

 

 

2022.09.13

여행을 다녀오니 역시 다시 집중 상태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계속 붕 떠있고, 식생활도 뒤죽박죽이고, 차분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가게를 쉰지도 벌써 한 달 반이 지나버렸는데,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못했고
그렇다고 작업을 그리 진행시키지도 못했다.
작업을 당장 몇 달 안에 만들어낼 생각은 아니지만,
꾸준히 생각을 이어가는 패턴을 타야 오래 걸리더라도 고민을 할 수가 있으니까.
일주일이라도 생각을 쉬면 다시 돌아가기가 어렵다 이젠.

H 연출님을 만나 얘기한 것도, 이제 중년의 작가들이 제도의 지원을 계속 받기가 쉽지 않다고.
내가 늘 대단하다 여겼던 CS 연출님도 올해 많은 지원에서 떨어져 힘들어 했다는 말을 들었다.
중년의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작업도 돈도.

젊은 게 달리 좋은 게 아닌 것 같다.
궁금한 것이 많고, 재밌는 것이 많고, 기대되는 것이 많은 것이 가장 부럽다.
나도 젊을 땐 남부럽지 않게 그렇게 살았으니, 그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11월까지는 차분하게 생각하고 읽고 끄적이는 시간을 이어가고 싶다.
일도 하면서 그럴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해.

2022.07.21

암. 잘 참는 게 어른스러운 모습이지 (40대 중반까지도 어른스러움 운운)
이번주 여러가지로 스트레스와 감정 소모가 많아서 인지
하루 종일 몸에 힘이 없다.
감정 소모가 많을 때는 바쁜 게 좋은지, 할 일이 없는 게 좋은지
어느 쪽이 더 좋은 걸까.

여행 욕구도, 소비 욕구도 전무한 상태다.
멀리 나가는 것도 싫고 낯선 곳에 서있기도 싫다.
어제는 조용한 가게 테이블에 앉아있다가 바람이 쐬고싶어져
망원한강공원까지 걸어가서 생맥주 한잔을 마셨다.

과거에 엉켜있던 매듭을 잘 풀어놓기.
지난 주에 한가지를 조금은 풀었다.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 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2-30대의 나를 돌아보는 일은 무척 괴롭지만.

2022.07.20

예술인복지재단에 신청한 예술활동증명 갱신이 서류미흡으로 미완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혈압이 쭉 올라갔다.
자세히 설명하긴 열받는데, 서류 보완해서도 인정안해주면,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제도 안에서 하는 작업은 정말 손을 떼야겠다.
그냥 혼자 재밌게 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매번 떨어지고 실망하고 자신감 떨어지고, 이렇게 내 40대를 다 보내긴 너무 아까워.
50대 되어서 보면 지금처럼 신체 건강한 40대에 시간을 낭비한 게 얼마나 아깝겠어.
그냥. 너가 하고 싶은 거 해.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