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6-0814

아주 오랫만에 혼자가 아닌 작업실로 출근을 하는 요즘. 낡은 건물에 화장실도 말이 아니지만, 혼자가 아닌 곳에서 작업하는 것이 능률이 훨씬 좋다. 물론 집이 더 시원하고 쾌적하지만 집은 언제든 누울 수도, 티비 앞에 앉을 수도, 집안일에 정신이 팔릴 수도, 고씨가 애처롭게 야옹야옹하면 미안해져 내려올 때가 많기 때문. 그리고 꼭 작업실 때문은 아니겠지만, 하고 있는 일들이 예정 마감일보다 훨씬 일찍 쭉쭉 컨펌이 되는 바람에 남은 시간을 뭘하며 보낼까 설레는 중이다. 이 작업속도 뭔지 모르겠다. 역시 작업실이었나 싶기도 하고.
9월 개인전을 앞둔 D와 작업실에서 주3회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같은 학교 다니며 같이 작업했던 사이라 그런 것인지, 다 그렇지도 않겠지만 이 뭔가 가족같은 기분. 예전 B의 개인전 오프닝에 혼자 갔다가 도저히 적응 못해 참고 참다가 나가려던 차에 우연히 바깥쪽 자리에 있던 D를 만났던 일이 있었다. ‘지현아~’라고 불러서 돌아보니 D였다. 외지에서 가족을 만난 것 같은 울컥함(과장하면)이 올라올 정도였다. 지금은 B가 독일에서 돌아와 셋이 쓸 때 어떤 분위기일 지 상상이 안갈 정도의 편안함이 가득하다. D가 개인전을 위해 미리 사놓은 고급 스피커로 빵빵하게 음악을 듣곤 하는데 어제는 추억의 팝송과 가요 듣다가 결국 작업 중단하고 맥주 마시며 밤까지 춤을 췄다. 이제 작업실에서도 시작이다. 잘 됐지 뭐. 거긴 경찰 민원 들어올 일도 없고. 스피커 위에는 D가 석고로 작업한 정신병원이 묵직하게 올려져있다. 정신병원에서 울려퍼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그앞에서 춤추고 있는 두 작가.
8월안에 끝내야할 일도 아직 한참 남았고, 9월에 할 일도 남아있다. 내 작업은 언제 할까. 지금은 막막하지만 파바박 하고 떠오르는 것이 생기겠지. 뭐.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호주에서의 지원이 클 수록 부담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 아 잘해야지, 잘해야지.
성욱샘과 선경이가, 너가(언니가) 찍은 영화 궁금하다며, 영화를 찍어보라고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다. 작업에 큰 자신감이나 욕심이 별로 없는 요즘 그런 얘기를 들으니 여러 감정들이 들었다. 여튼 내가 영화를 만들면 어떨지 궁금해 하는 두 영화인이 있다는 것이 조금은 고맙고 재밌지만, 에이 내가 무슨, 이라는 생각을 바로 하고말았던 날 보면서 좀 속상하기도 했다.
요즘 고씨를 쓰다듬어주면서 진심 ‘사랑’을 느낀다. 고씨가 방광염에 걸려 돈도 수십만원 썼지만 아침저녁으로 약먹이느라 전쟁을 하고, 놀아주고, 신경써주고 애지중지 병간호를 했더니만 그전보다 훨씬 사이가 가까워져 더 나를 따라다니고 쳐다보고 야옹야옹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렇게 예쁜 아이가 와서 나를 졸졸 쫒아다닐까 싶다. 그리고 고씨를 택하여 데려온 B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느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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